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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8-26 15:06
지식비타민 : 엠씨스퀘어와 세계 스포츠용품 시장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478  
 
 
 [CEO] 엠씨스퀘어의 열풍 뒤
 
한 때 엠씨스퀘어가 유명했죠. 그야말로 대박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공이 꼭 좋은 것만 아닙니다. 꾸준한 성장이 훨씬 좋은 모델일 수 있습니다. 그간 엠씨스퀘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국경제 2014.1.29. 보도된 내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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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용 집중력 향상기 엠씨스퀘어로 유명한 지오엠씨의 임영현 대표(55)에게 올해 설은 각별하다. 기울어 가던 회사를 흑자로 다시 일으켜 세우고 맞는 첫 번째 설이어서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35억6600만원, 13억5000만원의 적자를 낸 지오엠씨는 지난해 영업이익 14억5000만원을 기록했다.

임 대표에게 지난 10여년은 고난의 시기였다. 1979년 설립된 지오엠씨는 2000년대 이후 엠씨스퀘어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자금난에 시달렸다. 급한 불을 끄려고 사채를 얻어 썼더니 감당하기 힘든 이자가 덮쳤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지급한 사채 이자만 600억여원에 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9년 유상증자 과정에서 불거진 배임·횡령 혐의로 남편인 이준욱 전 대표가 이듬해 구속됐다. 잇따른 악재로 2010년에는 코스닥시장에서 상장 폐지됐다. 1999년 말 3만8000원(액면가 200원)까지 치솟았던 회사 주식은 상장 폐지 당시 20원(액면가 500원)으로 주저앉았다. 

임 대표는 “아침에 잠에서 깨기가 두려웠다”며 “자살 유혹을 받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수면제 수십 알을 모아서 갖고 다닌 적도 있다. 임 대표는 재기에 나섰다. 그는 “직원 고객 등 주변 사람들의 기대를 도저히 저버릴 수 없었다”며 “포기했다면 안타까움과 실망만 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2011년 서울중앙지법에 기업회생 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해 인가받았다. 이후 직원들과 힘을 모아 신시장 개척을 시작했다. 의료기기 사업에 뛰어들어 그해 7월 부작용 없이 통증을 치료하는 페인스크램블러를 출시했다. 이 기기로 지오엠씨는 2012년에만 1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2년 3월에는 엠씨스퀘어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 형태로 만든 ‘엠씨스퀘어 모바일 M’을 내놨다. 여기서 월평균 2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실적에 힘입어 지오엠씨는 2012년 9월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최근에는 엠씨스퀘어와 생활용품을 결합한 ‘컨버전스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 10일 엠씨스퀘어를 베개와 결합한 ‘엠씨스퀘어 시너지’를 내놨고 다음달에는 엠씨스퀘어와 듀오백 의자를 결합한 ‘스마트 의자’를 선보일 예정이다. 공기청정기를 결합한 상품도 준비 중이다. 임 대표는 “올해 80억원어치를 팔아 27억2500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린다는 목표를 잡았는데 출발이 좋다”며 “회사가 탄탄해지면 주식시장에도 재상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임 대표는 “실패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냉철하게 찾아보면 누구에게나 불씨는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씨를 찾아서 죽을 힘을 다해 불면 불은 반드시 일어난다”며 “기적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좌절하면 주변에서도 외면하지만 노력하면 도와주더군요. 회사와 관련된 모든 분이 만족하는 날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입니다.”

양병훈 기자
 
 
 
 
 
 
 [전략] 세계 스포츠 용품 시장의 시장 다툼
우리가 흔히 보는 나이키, 아디다스 등 글로벌 브랜드들의 시장 다툼은 치열합니다. 한국경제 2014.7.7. 보도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의 짤막한 역사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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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스포츠용품 1위 업체인 나이키도 처음엔 일본 아식스의 소매상에 불과했다. 나이키가 변화하는 소비자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 신(新) 수요를 창출해 절대 강자 아디다스를 꺾은 과정은 후발 주자인 한국 기업들에 시사점을 던져준다.

1920년대 스포츠용품 시장이 태동한 이래 1970년대까지 글로벌 최강자는 아디다스와 푸마의 모체인 독일 다슬러였다. 다슬러는 50년간 세계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시장을 구축했다. 다슬러는 선수에서 스포츠 애호가, 대중으로 이어지는 수요 확산 경로를 파악해 올림픽과 월드컵 대회를 장악했다. 1948년 다슬러는 형제 간 불화로 아디다스와 푸마로 분리됐지만 이후에도 계속 세계시장을 양분했다.

스포츠용품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은 1970년대 미국의 나이키가 등장하면서부터. 나이키는 불과 10년 사이에 절대강자였던 ‘아디다스 제국’을 파괴했다. 나이키는 당시 세계시장에 불고 있던 ‘레저 스포츠 붐’을 공략했다. 건강을 위해 조깅을 즐기는 대중이 늘자 중저가 조깅화를 만드는 동시에, 생산거점을 한국 대만으로 옮겨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했다. 나이키는 이후 아디다스의 텃밭인 유럽시장까지 전선을 넓히면서 세계 1위에 올랐다.

1980년대에는 영국의 리복이 파란을 일으켰다. 1982년 미국시장에 진출한 지 5년 만에 리복의 매출은 300만달러에서 9억달러로 300배 넘게 올랐다. 1987년에는 세계시장에서 나이키를 꺾고 세계 1위에 올랐다. 리복도 나이키와 비슷한 전략을 썼다. 조깅 붐에 이어 여성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에어로빅 붐이 일자 ‘피트니스 웨어’라는 새 시장을 만들어냈다.

고전하던 나이키는 1990년대 ‘스타플레이어 마케팅’으로 시장 1위를 되찾았다. 마이클 조던을 앞세운 ‘에어 조던’ 시리즈가 히트한 것이다. 나이키는 이어 골프(타이거 우즈), 테니스(마리아 샤라포바), 미식축구(제리 라이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리복을 몰락시켰다. 쇠락을 거듭하던 리복은 2005년 아디다스에 인수됐다.

2000년대 스포츠용품 시장은 ‘아디다스의 반격’으로 압축된다. 아디다스는 디자인을 강화해 스포츠용품을 패션아이템으로 만드는 혁신에 성공, 점유율을 회복하며 나이키와 세계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최만수 기자